불안한 B등급 건설사 "차라리 C등급이 낫다"
은행 자금지원 미미…현진 부도 이후 위기감 커져

금융권이 최근 시공능력평가 37위 건설업체 현진을 부도처리함에 따라 건설업계가 다시 술렁이고 있다. 건설경기 회복으로 부도 공포가 사라지나 싶던 차에 갑자기 부도 소식이 날아든 데다 지난 3월 채권단이 실시한 신용평가에서 B등급을 받은 업체가 쓰러졌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B등급은 독자생존이 가능하다고 여겨지는 건설사에 내리는 판정. 하지만 B등급 건설사들은 은행권에서 신규 자금을 수혈받을 수 없는 데다 채권은행의 과도한 자금관리로 워크아웃에 들어간 C등급보다 경영이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업계 설명이다. 지난 3월 부도난 신창건설 역시 B등급이었다.

◆ 분양대금 손도 못대

= "미분양 아파트가 잘 팔려서 분양대금이 들어와도 은행 신탁계좌에 예치돼 한 푼도 마음대로 꺼내 쓸 수가 없습니다." B등급 건설사 임원의 하소연이다.

이 회사는 전국 여러 지역에서 미분양이 쌓이면서 심한 자금 압박을 받았고 지난 3월 채권금융회사에서 B등급을 받았다.

워크아웃을 면한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지만 채권은행과의 협의에 따라 진행된 구조조정은 예상보다 강도가 높았고, 은행의 신규 자금 지원 규모는 미미해 자금난은 여전했다. 다행히 올해 들어 1~2개 지역 미분양이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팔려나가면서 은행 계좌에 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A현장에서 들어온 돈은 A현장 공사비 외 용도로 사용할 수 없도록 은행이 철저히 제한하고 있어 회사 명의로 된 은행 계좌에 돈이 있어도 기본 회사 운영자금이 모자라 쩔쩔매는 것은 당시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다.

수도권 A현장과는 달리 미분양이 여전한 지방 B사업장에 마케팅 비용 등을 추가로 투입하고 싶어도 은행의 반대로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심지어 세금까지 체납한 상태다.

이 회사 관계자는 "은행이 자금 운용에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준다면 좀 더 효율적으로 미분양 마케팅을 펼 수 있을 것 같다"며 채권단의 자금관리 방식에 아쉬움을 표시했다.

◆ PF 하늘의 별 따기

= B등급 S건설사는 최근 수도권 동시분양에 참여할 계획이었으나 막판에 포기하고 말았다. 견본주택까지 다 짓고 오픈을 앞둔 시점이었다.

나름 분양성도 있다고 판단해 채권은행을 설득했으나 이자율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PF협상이 좌초돼 분양을 연기할 수밖에 없었다. 시공능력평가 순위가 100위 밖이라는 점도 PF를 받는 데 큰 걸림돌이었다.

또 다른 B등급 건설사 H업체 관계자는 "A등급 건설업체도 PF 받기 힘든 상황에서 사업성이 아주 높은 분양단지를 빼고는 PF가 불가능하다"고 하소연했다.

워크아웃이 개시된 C등급 건설사의 경우 대출금 만기 연장, 이자 탕감, 이자요율 인하 등 각종 금융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B등급은 금융지원을 거의 받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은행권에 자금을 요청했다가 유동성 위기가 들통나고 신용등급이 떨어질까봐 부실을 숨기는 사례도 적지 않다.

B등급 건설사 중에서도 관급공사와 공공사업 수주가 가능한 업체들은 그나마 사정이 낫다. 문제는 주택 분양에만 매달려야 하는 주택전문 건설사들이다.

미분양이 여전한 지방에 중점적으로 아파트를 짓고 있던 주택전문회사들 사정은 최악이다.

한 B등급 회사 관계자는 "은행이 부도만 나지 않을 정도의 운영자금을 대출해주는 조건으로 할인분양, 구조조정 등의 내용을 담은 약정서를 제출하도록 한다"고 전했다.

◆ 부도 확산 가능성은 낮아

= 건설사 부도망령이 되살아난 것 아니냐는 염려도 있지만 업계에서는 현진의 부도 파장이 확산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

김신조 내외주건 대표는 "정부의 건설 예산 조기집행으로 공공물량이 대거 쏟아진 데다 미분양 아파트가 소진되면서 건설업체의 경영이 나아진 상황"이라며 "현진이 부도 도미노의 시발이라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가 건설경기 버블을 차단하기 위해 금융규제 등 강공책을 다시 준비하는 데 대한 염려도 쏟아지고 있다. 도산 위험에서 막 탈출한 건설업체들이 다시 타격을 받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